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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

린 허쉬만 리슨: 나의 [나]들 전시, 기술 속에서 ‘나’는 어떻게 달라질까?

by 다람콩 2026. 10. 27.

린 허쉬만 리슨 : 나의 [나]들
📷 이미지 출처 : 서울시 전시 안내

 

   1. 린 허쉬만 리슨 전시 기간·장소·무료 관람 안내

 

《린 허쉬만 리슨: 나의 [나]들》 전시는 2026년 10월 21일부터 2027년 2월 21일까지 서울시립미술관 서소문본관에서 열립니다. 관람료는 무료이며, 전시 공간은 2층과 3층 전시실, 3층 크리스탈 갤러리입니다.

항목 관람 정보
전시명 린 허쉬만 리슨: 나의 [나]들
전시 기간 2026.10.21~2027.02.21
전시 장소 서울시립미술관 서소문본관 2·3층 전시실, 3층 크리스탈 갤러리
관람료 무료
화~목요일 10:00~20:00
금요일 10:00~21:00
토·일요일 및 공휴일 3~10월 10:00~19:00 / 11~2월 10:00~18:00
입장 마감 관람 종료 1시간 전
휴관일 매주 월요일, 1월 1일. 월요일이 공휴일이면 정상 개관
전시 해설 시간 화~일요일 오후 3시

 

관람 정보는 2026년 10월 26일 공식 홈페이지 확인 기준입니다. 특히 11월부터는 주말과 공휴일 관람 종료 시간이 오후 6시로 바뀌므로 방문 시간을 정할 때 살펴봐야 합니다. 운영 일정과 해설 프로그램은 변경될 수 있어 방문 전 공식 안내를 확인하는 편이 좋습니다.

 

린 허쉬만 리슨은 미국의 미디어아티스트이자 영화감독입니다. 여성의 몸과 정체성에서 출발한 관심을 영상, 인터넷, 인공지능, 생명공학으로 넓혀왔습니다. 이번 전시는 작가의 아시아 최초 미술관 개인전으로, 여러 매체의 작품 200여 점을 통해 60여 년의 활동을 살펴봅니다.

 

이 글은 공식 전시 자료를 바탕으로 작성한 관람 전 해설입니다. 작품의 구성과 배경은 자료에 근거하되, 일상과 연결하는 부분은 작품을 읽는 하나의 관점으로 제안합니다.

 

   2. ‘나의 [나]들’ 전시에서 살펴볼 질문, 나의 모습은 누가 정할까?

 

예전에 작성한 자기소개나 오래된 프로필 사진을 다시 본다고 생각해봅시다. 당시에는 자신을 잘 보여준다고 골랐던 문장과 사진이 지금은 낯설게 느껴질 수 있습니다. 기록이 틀린 것은 아닙니다. 그때 보여주고 싶었던 모습과 지금 자신을 이해하는 방식 사이에 거리가 생긴 것입니다.

 

린 허쉬만 리슨 전시를 읽는 출발점을 여기에 두어도 좋겠습니다. 기술 속에 남겨진 나는 현재의 나와 어떤 관계를 맺고 있을까요. 내가 고른 이미지라도 다른 사람이 받아들이는 순간에는 예상하지 못한 의미가 붙을 수 있습니다. 기록을 남기는 사람과 그 기록을 해석하는 사람이 항상 같은 생각을 하는 것은 아니기 때문입니다.

 

전시 제목 《나의 [나]들》의 대괄호는 기술 환경에서 복제되고 재구성되는 여러 자아를 담고 있습니다. 공식 설명이 제시하는 제목의 의미입니다.

 

여기서 복수의 자아를 단순히 계정이 여러 개라는 뜻으로만 받아들이면 작품을 읽을 범위가 좁아집니다. 계정 하나에도 내가 표현한 모습, 타인이 받아들인 인상, 시간이 흐른 뒤 다시 읽은 자신의 모습이 함께 놓일 수 있습니다.

 

이번 글에서는 세 작업을 통해 그 차이를 살펴보려 합니다. 로베르타 프로젝트에서는 사회적 관계 속의 나를, 카메라를 가진 인형에서는 시선을 확장하는 나를, 〈전자일기〉에서는 기록된 자신을 다시 보는 나를 생각해볼 수 있습니다. 작품을 연결하는 기준은 기술의 종류보다 내 모습을 만들고 해석하는 권한이 어디에 놓여 있는가입니다.

 

   3. 린 허쉬만 리슨의 로베르타, 내가 만든 인물이 내 뜻대로만 살 수 있을까?

로베르타 브라이트모어
📷 이미지 출처 : 서울시립미술관 전시 상세

 

〈로베르타 브라이트모어〉는 작가가 가상 인물을 만들고 현실의 사회적 관계 속에서 활동하게 한 프로젝트입니다. 외모와 말투를 설정하는 데서 그치지 않고, 계좌와 면허 등 사회적 기록을 갖추게 했습니다. 작가가 직접 수행하던 역할을 이후 다른 퍼포머도 맡았습니다.

 

이 작업에서 주목할 부분은 가상 인물을 얼마나 그럴듯하게 꾸몄는가보다, 그 인물이 다른 사람들과 관계를 맺기 시작했다는 점입니다. 혼자 설정한 인물이라면 성격이나 행동을 언제든 고칠 수 있습니다. 누군가가 그 인물을 알고 기억하게 되면 이야기가 달라집니다. 만든 사람이 정한 설정에 타인의 반응과 기대가 더해지기 때문입니다.

 

SNS 프로필을 떠올리면 이해에 도움이 됩니다. 자신을 차분한 사람으로 소개하고 그에 맞는 사진을 골라도, 다른 사람은 같은 표현을 거리감으로 받아들일 수 있습니다. 이것은 비교를 위한 가상의 상황입니다. 로베르타 프로젝트가 오늘날의 SNS 활동과 같다는 뜻은 아닙니다.

 

오히려 비교할 때는 차이를 함께 봐야 합니다. 로베르타는 현실의 제도와 관계 속에서 살아가도록 설계된 작업이었습니다. 이를 익숙한 ‘부캐’라는 말로만 설명하면, 한 사람의 정체성이 사회 안에서 인정되고 유지되는 조건을 놓치기 쉽습니다.

 

린 허쉬만 리슨 전시에서 로베르타 관련 자료를 볼 때는 이런 질문을 가져가면 좋겠습니다. "이 인물을 로베르타로 만드는 것은 작가의 설정일까, 남아 있는 기록일까, 그를 만난 사람들의 기억일까?" 하나만 답으로 고르기보다 각각이 어떤 역할을 하는지 살펴보면, 정체성을 외모나 성격의 목록보다 넓게 생각할 수 있습니다.

 

   4. ‘나의 [나]들’ 속 카메라 인형, 보는 범위가 넓어지면 나의 위치도 달라진다

사이버로베르타
📷 이미지 출처 : 서울시립미술관 전시 상세

 

〈틸리, 텔레로보틱 인형〉과 〈사이버로베르타〉에는 카메라가 장착되어 있습니다. 웹을 통해 인형의 시선을 조정하고 그 시선으로 공간을 볼 수 있도록 만든 작업입니다.

 

이 작품을 기술 장치의 신기함에서 조금 떨어져 읽어봅시다. 내 몸은 한곳에 있지만, 내가 바라보는 지점은 다른 곳에 놓입니다. 눈앞의 공간을 직접 보는 일과 장치를 통해 전달된 화면을 보는 일 사이에 어떤 차이가 생기는지 생각할 수 있습니다.

 

화면을 본다고 해서 그 공간 전체를 알게 되는 것은 아닙니다. 카메라가 향한 방향과 화면 안에 들어온 장면을 보게 됩니다. 이 점을 관람의 기준으로 삼으면, 시선이 확장되는 경험과 시야가 제한되는 조건을 함께 살필 수 있습니다. 무엇을 볼 수 있게 되었는지만큼 무엇이 화면 밖에 남는지도 질문하게 됩니다.

 

타인을 바라보는 위치도 생각해볼 만합니다. 직접 마주 보고 있을 때와 떨어진 화면으로 볼 때, "보는 사람은 자신의 존재를 얼마나 의식할까? 보이는 쪽에서는 그 시선을 알아차릴 수 있을까?" 이 질문은 해당 작품을 감시와 사생활의 문제로 읽어보는 해석입니다.

 

린 허쉬만 리슨의 카메라 인형 앞에서는 "내가 무엇을 보고 있는가"에 이어 "나는 어떤 위치에서 보고 있는가"를 물어보면 좋겠습니다. 관람객은 작품 밖에서 평가만 하는 사람인지, 장치를 통해 다른 사람을 바라보는 관계 안에 들어간 사람인지 살펴볼 수 있습니다.

 

장치가 허용하는 범위와 관람객에게 주어진 조작 권한도 구분해서 보세요. 직접 선택할 수 있는 부분, 이미 정해져 있는 부분을 나눠 생각하면 기술이 넓혀주는 자유의 구체적인 모양이 드러납니다.

 

   5. 린 허쉬만 리슨의 〈전자일기〉, 기록된 나는 과거에 멈춰 있을까?

전자일기
📷 이미지 출처 : 서울시립미술관 전시 상세

 

〈린 허쉬만 리슨의 전자일기〉는 자신의 경험을 영상으로 이야기하고 다시 편집해온 작업입니다. 공식 설명은 촬영되는 자신, 촬영된 자신을 보는 자신, 이를 통해 다시 이해하는 자신을 함께 짚습니다.

 

앞선 작업에서 타인과의 관계와 시선이 중요했다면, 여기서는 기록을 바라보는 자신의 위치에 주목할 수 있습니다. 카메라 앞에서 말하는 순간과 그 영상을 다시 보는 순간은 서로 다릅니다. 당시에는 설명하지 못했던 감정이 나중에 보일 수도 있고, 중요하게 여겼던 장면이 시간이 흐른 뒤에는 다르게 읽힐 수도 있습니다.

 

예를 들어 지난 공부 기록을 다시 읽는 상황을 떠올려봅시다. 처음에는 부족했던 결과만 눈에 들어왔다가, 시간이 지난 뒤에는 포기하지 않고 이어간 과정이 보일 수 있습니다. 기록 자체가 달라지지 않아도 읽는 시점과 관점은 바뀝니다. 이는 작품의 내용을 그대로 옮긴 사례가 아니라, 기록과 자기 이해의 관계를 설명하기 위한 예시입니다.

 

이 관점에서 영상 일기는 있었던 일을 보관하는 수단이면서, 자신을 다시 해석하는 재료가 됩니다. 어떤 장면을 남기고 어느 부분을 이어 붙일지 선택하는 과정에도 현재의 시선이 들어갑니다. 편집이 있다는 이유만으로 기록을 거짓이라고 판단하거나, 기록이라는 이유만으로 한 사람의 전부라고 받아들이기는 어렵습니다.

 

《나의 [나]들》 전시에서 〈전자일기〉를 볼 때는 말의 내용과 화면의 표현을 함께 살펴보면 좋겠습니다. 같은 이야기도 어떤 순서와 형식으로 제시되느냐에 따라 다르게 받아들여질 수 있기 때문입니다. 그때의 자신을 설명하는 목소리와 지금 그 기록을 바라보는 시선 사이에 어떤 거리가 있는지 생각해볼 수 있습니다.

 

   6. 린 허쉬만 리슨 전시의 세 작업을 비교하면 보이는 차이

 

세 작업을 나란히 놓으면 ‘기술 속의 나’라는 말이 조금 더 구체적으로 읽힙니다.

작업 자아를 살펴보는 방식 관람하며 생각할 질문
로베르타 브라이트모어 프로젝트 설정한 인물이 사회적 관계를 맺는 과정 다른 사람의 반응이 더해진 뒤에도 인물의 의미를 내가 정할 수 있을까?
틸리·사이버로베르타 장치를 통해 시선을 다른 공간으로 옮기는 방식 내 눈이 닿는 범위와 내가 이해하는 범위는 같을까?
전자일기 남긴 기록을 다시 보고 편집하는 과정 지금의 나는 과거의 나를 어떤 기준으로 읽고 있을까?

 

이 표는 작품을 비교하기 위해 정리한 해석이며, 미술관의 공식 전시 분류는 아닙니다.

 

로베르타에서는 타인의 반응이 인물의 의미에 개입합니다. 카메라 인형에서는 장치가 시선의 범위와 조건을 정합니다. 〈전자일기〉에서는 기록을 다시 보는 자신이 과거의 경험에 새로운 의미를 부여합니다. 각각 관계, 장치, 시간이라는 조건을 통해 나의 모습이 달라지는 방식을 생각해볼 수 있습니다.

 

이렇게 읽으면 "기술 때문에 진짜 나를 잃는다"거나 "기술 덕분에 자유로운 나를 찾는다"는 결론을 서둘러 내릴 필요가 없습니다. 어느 장면에서 내가 선택할 수 있고, 어디서 타인의 해석이나 장치의 조건이 작동하는지 구체적으로 살펴보는 편이 작품에 더 가까이 다가가는 방법입니다.

 

   7. ‘나의 [나]들’ 전시를 관람하며 자기 경험과 연결하는 방법

 

미디어아트가 낯설다면 작품마다 어려운 개념을 찾아내려고 애쓰기보다 자신이 맡게 되는 역할부터 살펴보세요. 자료를 읽는 사람인지, 누군가를 바라보는 사람인지, 장치를 움직이는 사람인지 구분하면 관람의 출발점이 생깁니다. 참여형 작품도 현장 운영 안내에 따라 이용하면서, 무엇을 선택하도록 되어 있는지 관찰하면 됩니다.

 

관람 메모를 남길 때는 작품에서 확인한 사실과 자신의 생각을 나눠 적어보는 것도 좋습니다. '작품에는 어떤 장치가 있었는가'와 '그 장치 때문에 어떤 기분이나 질문이 생겼는가'를 구분하는 방식입니다. 개인적인 감상이 작품의 유일한 의미가 되는 것을 피하면서도, 남의 설명을 반복하지 않는 기록을 만들 수 있습니다.

 

《린 허쉬만 리슨: 나의 [나]들》을 자신의 생활과 연결할 때도 닮은 점만 찾을 필요는 없습니다. 프로필을 바꾸는 일과 로베르타의 활동 사이에는 차이가 있고, 스마트폰으로 영상을 보는 일과 카메라 인형의 시선을 조정하는 일도 같지 않습니다. 어떤 부분이 닮았고 어디서 달라지는지 설명할 때 비교에 설득력이 생깁니다.

 

전시를 본 뒤에는 자신을 소개하는 문장 하나를 다시 읽어봐도 좋겠습니다. 그 문장은 지금의 나를 설명하는지, 과거의 내가 보여주고 싶었던 모습을 남겨두고 있는지 살펴보는 것입니다. 당장 고치지 않아도 괜찮습니다. 내가 남긴 모습을 조금 떨어져 바라보는 일만으로도, 이번 전시의 질문을 일상에서 이어갈 수 있습니다.

 

공식 전시 정보와 작품 설명은 서울시립미술관 《린 허쉬만 리슨: 나의 [나]들》 안내에서 확인할 수 있습니다.